글로벌 SPA의 공세에 가장 큰 타격을 입은 복종 중 하나가 캐주얼이라는 사실에는 그 누구도 이견이 없다. 1990~2000년대에 걸친 최고 전성기가 무색할 만큼 해외 발 거대 자본의 유입에 토종 패션 브랜드들은 힘없이 무너지고 말았다. 설상가상으로 동대문 및 스트리트 태생 브랜드들은 온라인채널을 매개로 각자의 입지를 넓혀가고 있으며, 특히 올해는 해외 프리미엄 브랜드들도 물 밀 듯이 몰려와 국내 캐주얼 업계는 그야말로 사면초가에 처했다.
그러나 어떠한 시장위기에도 저마다의 길을 헤쳐 나가며 선전하는 리딩브랜드는 존재하기 마련. 암흑기를 맞은 국내 캐주얼 시장에 희망의 불씨를 지피고 있는 이들의 처세술에 주목하고, 향후 내셔널 브랜드가 나아가야할 궁극적인 방향에 대해 진지한 고민을 해야 할 시기이다.
이경은 기자 89n@naver.com
캐주얼 vs SPA?
‘다윗’과 ‘골리앗’의 싸움
국내 패션시장에서 SPA가 차지하는 비중은 2008년 1.8%에서 지난해 8.5%까지 급증했으며, 글로벌 빅3는 올해도 어김없이 가파른 성장세를 지속하고 있다. 「유니클로」는 지난해 37%의 높은 성장률을 보이며 7,000억 원에 육박하는 매출을 기록, 업계 1위 자리를 확고히 굳혔으며, 전국 주요상권은 물론 대형마트 입점을 통해 유통규모 역시 빠르게 확장하는 중이다. 한편 「자라」는 전년대비 22% 상승한 2,000억 원대를 「H&M」은 1,200억 원대의 매출을 기록했으며, 이 두 브랜드는 올 하반기 국내 시장에서의 새로운 시도를 감행한다. 「자라」는 지난달 24일 온라인 몰을 오픈하며 유통채널을 다각화시켰고 「H&M」은 오는 14일 오픈 확정된 롯데월드몰 내 자매브랜드 「코스」와 「H&M홈」을 입점 시킨다.
빅3 SPA가 국내시장으로의 진입 활로를 닦아놓자, 한 동안 진출을 망설였던 「조프레시」 「니코엔드」 등의 후발주자들도 앞 다투어 한국마켓의 문을 두드리고 있다. 이로써 국내 시장에서 벌어지고 있는 SPA 춘추전국시대는 그 상황이 더욱 극에 치달을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지난 2009년 론칭한 이랜드의 「스파오」를 필두로, 국내 대기업에서도 SPA 전개에 힘을 쏟고 있다. 제일모직의 「에잇세컨즈」, 신성통상의 「탑텐」 등 뒤늦게 사업에 뛰어든 토종 브랜드들은 무서운 속도로 시장점유율을 높이고 있으며, 지난해에는 해외 SPA 대비 2배에 이르는 매출증가율을 기록하며 선전했다.
업계 전문가들은 현재까지 SPA가 장악한 국내 시장점유율은 불과 30%로 보고 있으며, 70~80%에 이르는 해외 시장점유율과 비교하면 글로벌 SPA에게 국내 시장은 아직도 무궁무진한 가능성을 내포한 블루오션인 셈이다.
비제도권 브랜드의 공습,
‘온라인’ 영향력 무시 못해
한편 온라인 플랫폼이 발달함에 따라 패션산업의 유통에도 신 패러다임이 제시되고 있다.
일찍이 온라인 유통을 베이스로 성장해온 쇼핑몰 브랜드들은 이제 그 규모를 무시할 수 없을 만큼 볼륨화되었다. 이들은 가로수길을 비롯한 관광특구에 오프라인 직영을 유치하기 시작하더니 현재는 백화점 주요매장에 자리를 꿰차며 제도권 브랜드들의 적대적 요소로 작용하고 있다.
심지어 최근 일부브랜드는 해외진출은 물론 면세점 입점 및 프랜차이즈 사업에 착수했다. 「스타일난다」는 이번달 신라면세점에 입점한다. 자사 뷰티브랜드 「쓰리컨셉아이즈」와 세컨드 브랜드 「KKXX」의 매장을 신라면세점 서울, 제주지점에 입점시킨다. 자사 온라인몰과 현지 쇼핑몰을 통해 홍콩 및 중국 시장에 기진출한 「스타일난다」는 여느 제도권 브랜드 부럽지 않은 다각화된 유통채널을 구축하며 대형브랜드로 성장을 거듭하고 있다.
「나인걸」은 지난달 24일 대리점 모집을 위한 사업설명회를 개최했다. 웹 기반의 쇼핑몰 브랜드가 본격적인 프랜차이즈 사업에 뛰어든 것 이번이 첫 사례임에도, 기대 이상으로 많은 대리점주들의 관심을 받아 이들 쇼핑몰 브랜드가 제도권과 동등한 위치에서 경쟁할 날이 머지않았음을 시사했다.
온오프라인 편집숍 등 비주류 유통을 매개로 전개해오던 스트리트 캐주얼도 현재는 백화점, 쇼핑몰 등 메인유통으로 활로를 개척하며 브랜드 인지도를 높이고 있다. 온라인 유통 벤처로 출발한 브랜드인덱스는 지난해부터 전개하기 시작한 스트리트 캐주얼 「스놉」과 「크리틱」이 두 자릿수의 성장률을 기록하며 매출 고공행진, 해외시장 공략 및 단독매장 오픈을 준비 중에 있다. 「브라운브레스」는 자사 직영매장 중 백화점 및 쇼핑몰 입점매장이 절반 이상을 차지한다.
SPA 모시기 극성,
백화점 넘어 대형마트까지
백화점 측에서는 저렴한 수수료와 넓은 평수를 제공하며 SPA를 유치하고, 주목받고 있는 일명 ‘길거리 표’ 브랜드들 또한 캐주얼 메인 조닝으로 영입함으로써 캐주얼 브랜드들을 서서히 입점 우선순위에서 배제시키고 있다. 지난 2000년대 활황기를 누리던 시절, 토종 브랜드들의 활약 덕택에 백화점 유통이 현재에 이르는 규모로 성장할 수 있었기에 업계가 느끼는 배신감은 이루 말할 수 없다.
대형마트마저도 「유니클로」 「탑텐」 등 SPA 모시기에 열을 올리고 있는 터라, 의무휴업제의 여파에 한 차례 충격을 입은 브랜드들은 다시금 위기를 맞고 있다. 한편 롯데를 필두로 전국적으로 아웃렛 사업이 활발하게 전개되자 백화점 대비 현저히 저렴한 수수료와 넓은 매장면적 제공에 메리트를 느낀 다수 브랜드들이 속속 입점을 진행했지만, 아웃렛의 특성상 워낙 저가인 캐주얼 브랜드들에게는 그다지 큰 이윤으로 돌아오지 않고 있다는 평이다.
‘차별화’만이 살길,
스포츠&캐릭터 승승장구
매 시즌 브랜드 볼륨 성장대신 ‘유지’를 목표로 하는 캐주얼 브랜드들이 대부분인 상황이다. 업계 관계자들은 “역신장을 면한 것만으로도 브랜드가 선전한 것”이라 말한다. 그러나 열악한 시장 환경에도 현명한 처세를 발휘하며 ‘위기를 기회로’ 만드는 몇몇 브랜드가 난황 속 새로운 리딩브랜드로 부상하며 한국 캐주얼이 나아가야할 방향을 제시하고 있다.
SPA 여파에 가장 먼저 타격을 입은 조닝은 ‘이지&스타일리시 캐주얼’이었다. 뚜렷한 개성보다는 트렌디한 감성을 앞장세우던 브랜드들은 이내 주목받지 못하고 몰락했다. 반면 상대적으로 브랜드 캐릭터가 강했던 ‘스포츠&캐릭터 캐주얼’ 조닝은 SPA에는 없는 브랜드만의 색깔을 강화하며 난황 속 새로운 가능성을 발견했다.
엠케이트렌드의 「NBA」와 에프앤에프의 「MLB」는 각각 농구와 야구라는 스포츠 종목을 기반으로 특색 있는 캐릭터를 구축하고 있다. 지난해 말부터 지속되고 있는 스포티즘 패션의 유행에 힘입어 스냅백, 스타디움 재킷 등의 스포티브 아이템들이 크게 히트를 기록, 이들 브랜드에 매출효자노릇을 톡톡히 했다. 한편 「NBA」는 ‘NBA’ 라이센스 체결 시 국내뿐 아니라 중국·홍콩·마카오 등지의 판권을 함께 계약, 미국농구에 대한 열기가 뜨거운 중국시장에 성공적으로 안착할 수 있었다. 더불어 「NBA」는 한류스타 송지효를 전속모델로 기용하고 매 시즌 콜라보레이션 스냅백을 출시함으로써, 국내는 물론 중국 소비자들에게도 높은 인기를 끌고 있다.
브랜드인덱스의 캐릭터 캐주얼 「팬콧」은 올 초 출시한 ‘스웨그 라인’이 대박행진을 기록했다. 캐릭터 플레이와 함께 트렌드를 읽는 상품라인 출시를 신속히 진행해 단 기간 내 볼륨브랜드로 성장할 수 있었다. 「팬콧」은 브랜드 콘셉트가 중국 소비자의 니즈와도 크게 부합해 지난 2012년 중국진출 이후 무서운 속도로 현지에서의 사세를 확장시켰다. 불과 론칭 2년도 채 안 되는 시점에 중국 본토의 주요상권을 대부분 장악했으며, 이번 달에는 말레이시아 1호 매장을 오픈, 향후에는 미주 및 유럽시장까지도 진출까지도 노리고 있다.
SPA 못 미친 ‘틈새’를 공략하라,
‘선택과 집중’으로 파이 되찾기
SPA는 국내 여성 및 캐주얼 시장을 점령하다시피 했지만, 그에 비해 남성복에 대한 장악력은 아직 미미한 상태다. 남성상품비중을 대폭 확대해 SPA의 덫에서 빠져나오는 전략을 펼친 브랜드들이 실제 두드러지는 성장률을 기록하며 선전하고 있다.
세정과미래에서 전개하는 「크리스크리스티」는 본래부터 남성에 강했던 브랜드다. 브랜드가 잘하는 것에 집중투자하자는 취지로 여성고객은 과감히 포기하고 남성 상품비중을 90%까지 늘리는 ‘선택과 집중’ 전략을 구사했다. 남성상품으로만 100% 채운 남성전용매장도 오픈했다. 이러한 「크리스크리스티」의 과감한 행보는 이내 성공적인 실적으로 드러나고 있으며, SPA에 부족한 디자인 감도를 무기로 브랜드만의 경쟁력을 확보하고 있다.
한편 더베이직하우스의 「마인드브릿지」는 ‘비즈니스 캐주얼’이라는 콘셉트를 확고히 다져오며 매 시즌 업계 선두자리를 지키고 있다. 몇 년 새 거세진 비즈니스 캐주얼 열풍도 매출 견인에 한몫 하고 있다. 장기간 브랜드 콘셉트를 일관되게 유지한 것에 SPA가 미치지 못한 틈새를 공략하는 전략으로 국내 및 중국 시장에서 선전을 지속하고 있다.
뭉쳐야 산다?
차세대 경쟁력으로 부상한 ‘리테일’
리테일이 강세다. 타 복종과 마찬가지로 캐주얼 업계에서도 다양한 형태의 ‘리테일 브랜드’ 론칭 붐이 일고 있다. 자사 브랜드를 한데 모은 ‘토털 매장’ 구축으로 상호 시너지 효과를 발휘하는 사례가 있는가 하면, 최근에는 해외 브랜드 론칭에 직접 뛰어드는 업체가 늘고 있는 추세다. 더휴컴퍼니는 기존에 전개해오던 의류 브랜드 외에 추가적으로 ‘엑스마켓181’과 ‘와이엠디’를 론칭하며 리테일 사업에 뛰어들었다. 자사 브랜드의 유통 활로를 넓히는 동시에, 해외 브랜드를 직접 들여와 단독브랜드로 전개하기 이전의 인큐베이팅의 장으로 활용하면서 신규 론칭에 대한 리스크를 최소화하는 전략으로 성과를 드러내고 있다.
실제, 지난 시즌까지 「UGIZ」 및 ‘엑스마켓181’ 매장에서 숍인숍 전개하며 인지도를 높인 미 스트리트 캐주얼 「어드바이저리」는 그 간의 높은 판매고에 힘입어 최근 단독 브랜드로 독립했다. 「어드바이저리」의 성공 전개에 탄력을 받은 더휴컴퍼니는 이번 시즌 호주 라이프스타일 브랜드 「로드사인」을 선보였다. ‘엑스마켓181’ 매장 등에서 30% 이상의 매출을 차지할 만큼 초반부터 인기가 좋아 「로드사인」의 경우도 내년 상반기부터 단독 전개에 나서기로 했다. 더휴컴퍼니 측에 따르면 숍인숍 브랜드 전개는 ‘매장’에는 고객 응집 효과로, ‘브랜드’에는 판로 개척 마련이라는 이점으로 작용하기 때문에 일거양득의 효과를 얻을 수 있는 전략이다.
한편 더휴컴퍼니는 지난 8월 현대 무역점에 해외 프리미엄 캐주얼로만 채운 ‘필로소’를 오픈했으며 하반기 중에는 수원 AK몰 내에 남성전용 편집숍을 개점하는 등 다양한 시도를 지속하며 리테일 사업전개에 대한 경험과 노하우를 쌓아가고 있다.